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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가장 큰 후유증은...... 내동생 문병원 국장의 죽음입니다.

기사승인 2021.08.21  00: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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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는 병에서 이기려는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

 
”목숨 걸고 예배 사수하자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는 마라“,”선동은 하지 마라“
”코로나 정부 방역 실패 잘못했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 신앙은 존중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해야 한다“
 
[뉴스에이 = 이광원 보도국장]난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12일 1시 40분쯤 대부분의 손님이 빠진 시간에 물회를 좋아하는 난 안양시 관양구에 소재한 식당에 12일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걸린 케이스다
 
그리고 코로나에 걸린 것을 앞선 “난 코로나를 식당에서 걸렸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중 걸리지 않았습니다”와 “코로나 19무섭습니다, 위드 코로나라고요? 그냥 감기로 여기라고요?“란 기사에서 가슴 아픈 글을 쓴 바 있다.
 
30년 가까이 기자로서 지금도 현장업무를 하고 있는 난 코로나 이후 평소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업무 특성상 전철을 타고 종로에 나가면 쉽고 빠르게 경비도 절감하면서 업무에 효율적이겠지만 항상 종로5가 취재를 갈 때면 비싼 가솔린차를 타고 간다.
 
그것은 내가 혈압이 있고, 당뇨도 있고 당뇨의 경우 당화혈소가 9로 상당하게 높게 나오는 관계로 코로나가 무서웠는데 전철에 많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 때문이다.
 
그만큼 코로나19 이후 ‘꺼진 불도 다시 보고’도 중요하지만 옆 사람이 헛기침만 해도 피하게 되었고, 죄송하지만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과 너무 젊은 청년이 몰려다니면 겁이 나서 나도 피했지만 항상 같이 다니는 故 문병원 국장(한국교회공보/한국기독언론협회장)도 천식이 있어 피해 다녔다.
 
목요일 안양보건소에서 오후 3시 30분경 “몸에 이상이 있는 분은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라”는 문자를 받은 난 금요일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체온이 36.2였기에 당시만 해도 외부로 코로나 증상의 유증상 척도가 되는 체온에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7일(토)오전 8시 30분에 안양 샘 병원에 도착 9시 10분쯤 코로나 검사를 했다. 증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5월과 6월에도 현장에서 다른 사람이 확진되었다는 것을 듣고 염려 차원에서 검사를 한 바 있고, 두 번다 음성.
 
샘 병원 검사 후 오후 5시 35분쯤 확진 통보를 사무실서 전화로 받고 곧 동안구 보건소와 만안보건소의 역추적 검사를 위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에서야 뒤늦게 말하지만 내가 확진되었다는 말을 당시 믿을 수가 없었지만 일단 확진되었다는 소리에 두려움 반 걱정 반...... 하지만 역추적하시기 위해 전화를 해주시는 아니 그 밖에도 신문사 사무실이 있는 금천구 보건소 등 업무를 보시는 모든 보건소 근무하시는 분들이 친절했고, 부드럽게 대화를 해주어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19일 아침에도 아무런 유증상이 없던 난 처음엔 생활보호소로 들어갔다가 증상이 있음 병원으로 가게 된다고 했지만 혈압과 당뇨, 그리고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병력을 보건소에 앞서 밝힌 난 이미 5월에 코로나로 입원한 동생을 통해 ‘기저질환이 있음 병원을 간다고 말해야 된다’ 고 해서 생활보호소로 간다는 말에 내심 걱정을 했는데 바로 양천구 신정동 서남병원(코로나 치료 전문병원)으로 간다는 말과 12시 30분에 앰뷸런스가 도착한다는 통보를 받고 2층 사무실서 대기하고 있었다.
 
곧 앰뷸런스가 도착하니 2층서 내려오다 사람과 접촉하지 말라고는 말과 차 문이 열리면 바로 타라해서 차 도착 전 2층 창문으로 밖을 보다 시간도 아끼고 사람도 마침 없어 바로 나가 차를 탓게 되었고 1시 전 병원에 도착 코로나 환자를 나르는 전용 바이오 이동 침대에 눕히고 난 가지고 간 옷가방을 다리 아래 끼우고 7층으로 이동 그리고 8호실 도착,
 
7층 8호실 입원 후 4분의 호흡기 전문 의사 선생님과 3교대 하시는 27분의 간호사 선생님들의 코로나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적 부담을 가진 환자들이 때로는 간호사에게 밖에 화를 낼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무더운 날씨 속에 무거운 방호복를 입고 고글 안경 사이로 흐르는 땀을 폭포수 같이 흘리면서도 나를 비롯 모든 환자들을 내 가족보다 더 귀하게 알뜰히 살피는 노력과 열정이 특히 나의 경우 병원에서 치료 중 심각한 상황이 발생, 위험한 상태에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의료진들이 걱정을 하면서도 내가 견디어 주고 있어 의료적인 판단을 해주고 치료에 힘써주어 난 살아난 것이다.
 
코로나는 병에서 이기려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함과 긍정적인 생각이 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천만 번을 말해도 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는 첫 순간에 환자가 순간 결정을 못 하면 위험하다, 순간의 결정이 생과 삶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나의 경우 증상이 없었지만 병원 입원 후 이틀 후부터 급격하게 폐 치료 임했다. 그리고 산 것이다, 늦었다면 나도 분명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지만 난 19일 입원 그리고 19일 퇴원 결정을 받아 31일 동안 병실에 있다가 코로나를 이기고 퇴원을 했다.
 
난 몸무게가 (근육으로 약 106kg 병원 입원 전) 2-3kg 정도 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퇴원 후 다리 허벅지에 근육이 빠졌다. 또한 몸 앞가슴 부분과 허리띠는 마지막 칸까지 칸을 두 칸을 줄여야 했지만 두 칸 정도 구멍을 더 뚫어야 할 판이다.
 
이것은 상황상 말한 거지만 퇴원 후 병원에서 나와서 택시를 타기 위해 300m 거리를 걷는데 숨이 차는 것은 두 번째 평소 우습게 봤던 300m가 걷는 것 자체가 포기하고 싶은 맘 굴뚝같고 택시를 부르는데 마음만 급해서 소리를 질러 보지만 배에 힘이 없는 것인지 온몸에 힘이 없어서인지 아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인지 목소리가 필요한 때 나오질 않는다.
 
시흥동 사무실에 도착 후 집이 있는 태평 4동 동사무소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 코로나 양성 확진 통보를 받은 안양 샘 병원에 차를 주차 후 서류를 받아서 다시 주차장 그런데 올라가는 길이 두 곳이었고 내려온 곳과 정신 집중이 안 되는 난 나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근데 같은 주차장 건물인데 차가 안보여 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평소 같음 3층 정도는 한 순간으로 뛰어 올라갔는데 3층을 걸어 올라가면서 내 입에서 쏟아지는 거친 숨소리 다리 힘은 없어 주저 앉고 싶고, 마치 곧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한편 두려움을 또 갖게 한다.
 
퇴원할 때 걱정되어 서남병원 담당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문득 생각난다.
 
“환자분 퇴원하시면 병실 좁은 공간과 달리 밖은 힘들어요. 그리고 근육이 다 빠져서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밥 한 그릇에 반찬 등 간단 단순하게 드시지 마시고 황제처럼 뭐든지 가리지 말고 많이 드셔야 합니다. 근력 운동을 하셔야 하고요, 걷다가 숨이 차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걷더라도 무리하시 마시고 근력을 키우셔요” 맞는 말이다 하루를 겪어 보니......
 
차에 타서 문득 항상 내 옆에 있어야 할 병원이가 안 보여 그냥 눈물이 난다.
나는 내 동료이자 친 혈육보다 함께한 시간이 많았고, 내 혈육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문병원 국장을 코로나로 확진시킨 장본인이 되었고, 동료들 가정에 대소사를 챙겨주던 병원이에게 ‘내가 죽음 네가 성남 형수와 병원이를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내 딸을 슬프지 않게 해주고, 장례를 해줘라”했던 동생을 먼저 보낸 것이 내 심장을 에이는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내 한쪽 중 반쪽이 잘려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과 슬픔 때문에 퇴원해서 사무실에서 눈물로 살고 있다.
 
8월 7일 새벽 문병원 국장이 사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나도 병원 입원 중 막 위험 순간을 3번째 넘고 새벽에 선잠을 자고 있다 듣고,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입원한 방은 4명이 함께 사용하는 다인실이었지만 가슴을 내가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8일 주일 밤 오후 10시 하나님 품으로 갔다는 문국장의 소천 소식을 듣고 전화를 끊고 울다가  난 혼절을 하고 말았다.
 
문 국장과 근 30여 년을 매일 같이 차 타고 다니고, 같이 밥 먹고, 그래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곳에 사무실을 얻고 저녁때도 언제든 ‘형 커피 한잔하자”하면 10분 거리. 문병원 국장 주변을 나보다 더 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생각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 그만치 이 땅에서 나의 가족과 같이 나의 삶의 전부였던 동생이었다.
 
그래서 병원이 동생 목사님과 통화 후 혹시 몰라서 전 날도 의논했던 장례 절차를 위해 난 정신을 수습하고, 주변에 대한 물음에 답해드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병상 이지만 전화로 부고와 함께...... 또 그것을 보내면서도 내가 보냈다는 미안함과...
 
몸에 열이 다시 고열로 진입하면서도 정신은 또렷해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잠을 못 이루며 다시 생각해 보니 문 국장의 소천, 사망이 준 교훈은 나에게 더 크나크게 다가온다 이거는 어찌 나에게 뿐이겠는가?
 
코로나 시국에 근 20개월 가까이 엄청난 회오리 속에 빠진 한국교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국교회는 교회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신앙인이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신앙은 존중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코로나 조심해야 한다ㆍ확진 된 순간 바이러스가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목숨 걸고 예배 사수하자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는 마라“  한국교회 목사들 스스로 손을 가슴에 모아 놓고 답해 봐라 왜 남의 목숨 책임질듯 하지만 가장 무책임의 대명사가 한국교회 자화상 아니 었던가?목숨걸고 예배 드리는건 신앙인 이라면  다 해야 할 당연한 것이지 이것은 개인의 신앙의 영역속에서 개 교회가 조용히 철저한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처리할 일이지 자기와 신앙의 모습이 다르게 하고 있는 교회를 평가하고 쉽게 판단해서 공격은 하지 말아야 한다 ㆍ자기만 마치 이시대 의인 처럼 행동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교회들을 선동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신앙의 모습이 어찌 자신의 행동만이 정당 하다고 말할수 있는가?신앙은 결국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관계인것을 그래서 개인의 신앙은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라는 모습에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지금 현재 이렇게 코로나 사태를 만든 것은 물론 정부와 여당이 방역을 잘못했고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로 하여금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맞지만 그리고 교회가 코로나로 정신을 수습 못하는 틈을 타 정부여당은 사회를 무너트리는 ’평등법‘ ’가정기본법‘ ’차별금지법‘ 발의로 한국교회는 이것을 막느라 애쓰는 그래서 우리는 방역 실패와 이런 악법을 만드는 정부를 우리는 공격을 해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성을 땅에 도맷값처럼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 우리 개인의 행복 등을 인하여 내가 부르짖는 것만이 다가 아니란 걸 나는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나도 코로나 걸리기 전에는 그랬었다. 비판하며 나도 정말 일부 선동하는 목사들을 보면서 한편 잘하고 있다는 스치는 생각도 해봤고, 작년에 처음 대응을 못하여 결국 교회 예배 참석 숫자까지 정부가 정해주는 대로 참석해야 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끌려가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하지만 코로나로 한 사람의 죽음을 그리고 코로나로 죽음의 터널을 수차례 넘기면서 그리고 병원이를 보내야 했던... 코로나.
 
다시 병원 병상에서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진짜 맥없이... 하는 생각을 할 때 정말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교회는 불의에 대하여 대항도 해야겠지만 예수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국민 보건과 이웃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도 하나의 사명이기에 힘들지만 교회이니까 해야지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금 힘을 내본다.
 
나에게 코로나로 온 가장 큰 후유증은 코로나로 내 곁을 먼저 떠난 병원이의 죽음입니다

이광원 기자 newsa@new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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