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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호프미션 졸업을 앞둔 유학생들의 과거 ㆍ현재ㆍ미래 이야기

기사승인 2023.05.25  23: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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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기 김서진 (광주) 호프를 마치며

나는 세계최고의 학교를 다녔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일어난 7시, 어김없이 밥을 먹고 시원한 물에 잠을 깨며 학교로 간다. 수업을 다하고 다시 기숙사에 돌아와 클럽에 가라고 외친후 마지막에 기숙사에서 나온다. 

클럽을 하고 저녁에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웃으며 밥을 먹고 예배를 준비한다. 하루하루 인생의 가치관과 기본을 배우는 예배를 드린후 저녁점호를 하고 잠에 든다. 

이제 이 삶, 이 학교를 졸업한다. 기나긴 내 학창시절의 절정을 함께 했고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위해 이곳에서 기초를 가다듬었고 토양을 가꾸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서있다. 3년 전 그때처럼.

하얀 눈이 오늘 날 그때는 새해 전날이었다.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겨울 캠프를 위해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도착한 호프, 그렇게 시작한 17기 캠프. 17살의 나는 호프에 와서 처음부터 막 좋고 행복하고 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나였지만 그속 뜻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공부하기 무서워서 선택했던 도피였다. 

그래도 새 삶을 시작하길 마음 먹고 캠프생에서 17기 유학생으로 전향을 했다. 도피식으로 시작했다고 했던가, 역시 나는 잘 적응하기 보다는 열심히 한국에서 처럼 이곳의 단점만을 보기 시작 했다. 

몇몇 신입생들을 데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 이래 저래 불평을 하고 쾌락과 재미만 쫓으며 하루하루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한학기가 마무리 단계였던 방학 3일 전쯤 목사님께서 문제가 있는 친구들을 콜로세움으로 모으셨다.

 나는 왜 거기 명단에 낀지 모른체 그들과 함께 서있었다. 모두 한명씩 단점을 지적받고 조언을 들으며 서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내차례가 되어 나에게 물으셨다. “무엇때문에 여기있는거 같니?”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모르겠어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처음듣는 정곡에 찔리는 한마디를 듣는다. “너무 교만하다”. 자만심으로 남을 깎아내리고 남보다 내가더 낫다라는 표현으로 남의 단점을 휘짓고 그런 무차별 적인 나의 행동들을 딱 보여주는 한 단어였다. 잘나지 않은 나를 잘난것처럼 보이기 위해 나는 살아 왔었고 그 말을 한국에서는 들을수 없었지만 이곳호프에서는 들을수 있었다. 

“호프는 그사람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것을 해결할수 있게 하는 학교이다.” 나는 완벽히 나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할수 있었고 내 첫 호프에서의 학기는 끝이 났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모든 상황이 락다운에 걸려 우리 호프는 다시 돌아갈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역시 나조차도 학기 마지막 호프의 인상은 완전히 깨진 나였기에 다시 돌아가서 잘난척 하며 살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엄마에게 또 한번의 도피를 위해 자퇴를 하고 싶다 입장 표명을 했지만 엄마의 굳은 확신은 날 임자도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다시 한국에서 시작한 호프, 4개월간의 길었던 방학에 반가운 얼굴도 많이 보이고 처음 1주일은 수련회 온것처럼 재밌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내 불평과 불만은 똑같이 건재 했고 목사님께서 말한 교만이란 단어는 그냥 날 불편하게 했을뿐이지 내 인생의 변화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나를 호프는 다시 한번 반등시켰다. 호프 가치중에 공동체 생활을 하며 얻을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중 형들이 동생들에게 인생선배로써 알려주고 조언해주며 동생이 옳은길로 갈수 있게끔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나눠줌으로써 다음 동생들에게 물려주는 그런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나는 여기에서는 배울게 없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배울려는 자세를 포기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시끄럽고 잠안오던 밤이었다. 어김없이 불평을 하고 있었던때 리더형 한명이 나에게 와서 불평하는건 옳지 않다라고 말을 해주었다. 사실 처음듣는 말이었다. 그래서 조금 의아 했다. 그 말 조차 반박하려 들려는 찰나 그 형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평하고 있으면 행복해?” 내 불평하던 입에선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정말 불행했기에, 행복하면 안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나는 정말 간절히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수 있을까요?” 그 말에 답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긍정으로 모든것에 감사하며 살아라”. 그러면 행복해 질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부터 였을까, 점점 호프의 가치들과 엄청난 것들이 내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싶은 그런 소년이였다. 한국에서의 내 삶은 어릴 때부터 작은 아이로 살아가면서 항상 위축되는 모습들이 있었고 자기 방어적 본능으로 까탈스럽고 남들의 무시를 듣기싫어 무엇이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커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잘난 삶을 살아야만 맘이 편하고 남의 위에 있어야만 편한 맘을 가질수 있었던 나로써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또, 감사보다는 그 상황을 까는 그런 성격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기엔 어떠한 행복과 감사 감격 감동이란 존재 하지 않았다.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고 바뀌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행복하고 싶어 모든 일에 억지로 라도 감사를 해보았고 그렇게 살아 보니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내인생에 “감사할 것”들이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들, 입은 옷들 ,볼수 있는 눈, 웃을수 있는 얼굴과 함께 옆에 함께 있는 친구들 그리고 살수 있는 삶의 희망과 기회들까지 뭐하나 감사 안할수 있는게 없었다고 깨닫는 순간 마음이 그 어느때보다 안락 하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목사님의 큰 빅피쳐가 담겨있고 인생의 올바른 가치관과 호프 가치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신안에서 목사님의 설교후 적은 적용중 아직도 기억에 확연히 남는 내용이 있다. “뭐든 도전해 보자”는 그 문장이 나의 삶을 또한번 바꿔 놓았다. 누구도 시도 하지 않았던 연극부를 영상으로 제작을 했고 연극부 총 감독을 맡으며 눈물나는 명작도 만들어 보고, 안해본 춤도 춰보며 나의 흥도 찾아보고,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며 새로운 인연도 만들어 가며 참 많은 시도를 하던중 호프는 재정비를 위해 일보 후퇴를 하며 해산하게 된다. 

새파란 바다와 선선한 바람, 드넓게 펼쳐진 절경이 있는 이곳, 제주도에서 호프는 다시 시작 했다. 벌써 나는 10학년 2학기째 하고 있었고 이제 본격적인 호프 인생을 시작했었던거 같다. 지금까지는 이곳을 부정하고 나갈려고만 했었지만 점점 이 학교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스며들게 된것이다.  호프의 큰 가치중 자기주도적 학교, 학생이 학생 스스로의 선생님이 되고 리더가 됨으로써 자신을 이끈다는 그런 가치이고 원리인데 나는 그것을 깨닫기 이전까진 꽤나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나의 선생님이 되기전에 남에게 매겨지는 평가에 신경을 썼고 잘하는것만 하게되었다. 역시 호프는 남이 평가하는 곳이 아니고 내자신이 나를 바라보며 평가하는곳이기에 당연히 성과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로 살기 시작했던 다음 학기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 했고 또한 도전함으로써 날 더 성장시키려는 그런 마인드가 있었기에 못하는것에도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페이스에 몰입하며  내 실력도 많이 상향 시켰던거 같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닌 내 스스로 공부를 하다보니 즐거웠다. 

호프 가치대로 사니 인생이 잡히고 하나하나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가치들은 공부 측면만이 아니었다. 우린 아르본 리조트, 그리고 샤모니 리조트 이렇게 옮기며 제주살이를 했다. 우리 목사님은 수학문제, 영어문제 하나를 중요시 하기 보다는 인생의 경험을 훨씬 중요시 하고 인생을 배우고 기초와 기본을 쌓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제주도 전역을 다니며 아웃팅을 많이 나갔었다. 정말 제주도의 내로라 하는곳은 다 가보고 사진도 찍었었다. 많게는 학교도 휴교하고 일주일 내내 제주도 트립을 간적도 있다.

 그러면서 인생에 잊지못한 추억들과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서로 공유할수 있는 기억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또한 친구 관계에 있어서도 정말 돈주고도 못살 그런 평생갈 친구들을 많이 사겼던거 같다. 그런 멋진 친구들을 사귀고 보며 나의 단점들도 보완하고 또 많은 대화를 나누며 좋은 가치관과 마인드들을 적립할수 있었다. 

항상 옆에서 함께 자던 은우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된것처럼 어떻게 하면 우리 학년 친구들이 더 멋지게 살고 발전할수 있을까? 라는 토픽으로 깊은 이야기의 향연에 황홀한 밤들을 보냈다. 단연 반등 성공이었다. 호프의 가치대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선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대로 먼저 감사 하고 긍정적이게 변하니 주변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만 모였고 그렇게 멋있는 친구들을 많이 사귈수 있었던거 같다. 

그렇게 살다보니 벌써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시킬 방학때가 다가왔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호프에 있는 시간이 훨씬 귀중하고 값지다는걸 느끼고 은우를 꼬셔 같이 미니캠프에 남게된다. 

그당시 신입생들과 신입리더, 주요리더들 몇몇이 미니캠프에 남게 되었는데 나랑 은우는 자원으로 남은 케이스 였다. 큰 기대를 품으며 호프의 있는 가치들과 행복감들을 느낄생각에 설레었다. 내가 기대한 호프를 200%충족할 만큼 미니캠프에서의 삶은 정말 행복했다. 일주일에 세번씩 나갔던 제주도 아웃팅부터 대한민국 가장 높은 한라산도 정복해 보고 하나하나 내 한계를 깨며 나아갔던 캠프였다. 

무엇보다 수학쌤으로 섬기며 아이들의 수학을 가르쳤는데 사실 난 수학이 정말 싫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즐겁지 않았고 그냥 문제로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르침의 즐거움과 아이들의 깨닫는 모습으로 새벽 2시까지 안자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시간이 행복했고 너무 알찼고 남을위해 공부를 한다는게 어떤것인지 깨달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금방 지난 한달이었고 주변사람들이 리더로 바뀌니 내 시각도 많이 바뀌었고 깊은생각과 호프에 대한 감사가 넘쳐났던 시기였다. 

그때 성윤누나의 권유로 리더캠프까지 참여하게 되었고 리더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되는데.

 호프는 중앙 리더 시스템이 있다. 다른 한국의 학생회랑은 정말 판이 다른 시스템이다. 표면적으로는 리더들은 목사님의 큰 가이드를 받고 세부적인일, 스케줄 부터 학생 한명 한명 케어까지 모두 리더들이 담당하여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목사님의 수준높은 가르침과 훈련들이 있고 그렇게 호프 리더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정말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런사람들 사이에서 훈련받는 캠프인 리더캠프는 나에게 또다른 세상을 제시하고 밝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목사님의 리더 세션부터 해서 하나하나 활동에서 나오는 인싸이트들은 나의 마음을 들끓게 했고 더욱 큰틀을 보게했다. 그냥 팔로워로써 살아가던 나에게는 굉장히 큰 변화 였고 리더적 시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것이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 오랜만에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밥한끼 하게 나와라” 주찬이형의 방학 첫 연락이었다. 같이 리더캠프까지 하고 많이 보자 했던 형이 였지만 첫 연락이 꽤 늦어져 서운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주찬이형은 눈치를 몇번 보다가 입을 땟다. “너 리더로 뽑혔다. 그러니 서약서 써야된다” 사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리더캠프를 하며 리더로써 너무 배우고 싶은게 많았는데 팔로워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자리로 초청해 주시니 나는 너무 감사했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다시 다음학기 제주도로 떠난다. 

나는 단연코 호프 생활의 클라이막스는 리더라고 말하고 싶다. 리더를 해야만 알수 있는 것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백그라운드 스토리 까지 눈물 없이는 볼수 없고 느낄수 없다. 

하지만 처음 리더로써의 김서진은 정말 부족함을 넘어 팔로워 그 자체였다. 

이해가 안되는게 있다면 리더회의때 다 물어 봤다. 이해를 시켜주는 리더형, 누나들의 말을 듣는척 했지만 계속 내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며 뒤에서 다른 얘기를 하던, 자꾸 리더와 팔로워 대립관계를 구축하려 했던 나는 리더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리더선배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나에게 끊임없이 조언하고 가르쳐 주셨다. 어느 한날은 비가 오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주일 폰받는 시간이었지만 주찬, 민중, 명길 남임 3대장이 나를 불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고 꾸짖음도 많이 들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말과 내 리더인생을 완전히 바꿔주는 말을 들었는데 “그럴거면 리더 그만둬라” 이말은 들은 나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내가 리더를 처음 시작하며 했던 감사와 감동 그리고 감격의 초심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그시절 11학년 임원으로써 많은 일을 담당하고 친구중 나만 리더였기에 친구들과도 멀어지는게 눈에 보일정도 였고, 또한 항상 규칙을 잡을수록 나를 향한 뒷말이 나오고 누군가에게 선하게 다가가는것도 일처럼 보일까 무서웠다.  

그런데 또 회의때는 항상 내가 틀렸다 하니 사실 난 많이 힘들었고 리더를 그만 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 정말 그만둘까 고민을 하던 도중 그냥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한국에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사실 “그럴거면 그만두고 눈치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라는 위로의 말을 기대했었다. 그렇지만 내 친구는 이 말을 하고 유유히 전화기를 껐다. “니가 좋아서 선택한 거 아니냐? 그러면 포기하지말고 해라” 

그 말을 들은 나는 포기할수 없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지금 남학생장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힘들때 포기하지 않았기에 엄청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일어난 나는 다시 초심을 찾기로 마음 먹었다. 뭐든 감사하고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진심으로 살아가기로 그리고 남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기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내 친구, 인간관계 문제는 알고보니 사실 내가 생각한 하나의 오해였을 뿐이였고 내 친구들은 항상 날 믿어주었고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내가 호프의 기여하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힘이 났고 또한번 최선을 다할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랑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끼고 그걸 내 인생에 원동력 삼았던 시기였다. 정말 사랑하고 내 모든걸 내어준다 생각하니 남들이 무슨말을 하든 들리지 않고 그 사람 한명에게 진심으로 집중하고 모든걸 쏟아부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의 시선쯤은 가뿐히 이겨낼수 있었다. 

그동안 미국 뉴욕-보스턴으로 비전트립도 갔다오고 패밀리 데이 엠씨도 하며 큰 경험들을 많이 했다. 미국 비전트립은 나에게 큰 세상을 제시한 트립이었고 호프의 교육이 세계최고의 교육이라는것을 확증시켜주는 트립이었다. 여행중 마주친 많은 문제속에서 우리 미국트립팀은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고 많이 성장한 나를 만날수 있었다. 

엠씨도 마찬가지로 성공적이게 윤진이와 합을 맞추고 내인생에 잊지못할 하나의 좋은 경험을 했다. 목사님이 하시는 저녁 설교는 항상 나를 위한 말씀 같았고 적용하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학년 친구들과 같은 방도 쓰면서 분위기도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리더진이 보강이 되면서 친구들과 리더호흡을 맞추며 한발짝 더 나아갔다. 

그러면서 내 의견만 말하는게 아닌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힘을 합하여 최고의 결과물을 만드는 토의 하는 스킬을 많이 길렀던거 같고 점점 더 내 안에 있는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더큰 공동체를 위해 살다 보니 그게 결국 내인생에 도움이 되고 날 더 발전 시켰다. 그렇게 나는 매일 성장하고 발전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9살 그리고 또 새해 첫날, 십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난 또 직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뜻밖에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필리핀이 열렸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남의집 살이가 아니라 내집살이를 할수있다니 참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끝나갈때쯤 우린 샤모니에서 해산을 했고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사람들이 다시 필리핀에 갔을때 나는 늦게 까지 집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위축되기는 커녕 호프에서 채워진 자신감에 위풍 당당 했었다. 언제는 기타를 들도 집앞 공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온라인 클래스를 하고 있을때도 운동을 할때도 전과 달리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었다. 전에는 상상치도 못할 일들을 스스로 해내고 있는 나를 보았고 난 한번더 느꼈다. 호프가 날 더 바꾸고 있다고.

감기를 훌훌 이겨내고 나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되었다. 2년만에 입국이라 떨리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역시 설레는 마음이 제일 컸다. 다시한번 밟은 필리핀 땅에선 여전히 뜨거운 공기가 날 감싸고 있었지만 불평할만큼 한가로운 내가 아니었기에 얼른 애들을 챙기고 체크를 한후 버스에 태우고 학사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도착한 학사는 더 높아져 있었고 커져있었다. “학사도 발전했네” 신기했다. 호프라는 학교는 학생만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학교 자체도 발전하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걸 새로이 깨닫고 필리핀 호프를 출발했다. 

이제 11학년을 마무리 하고 다음 12학년, 호프를 이끌어야할 나이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리더 형 누나들이 하는 조장미팅같은 일부터 사람 한명을 살리기 위한 학생들을 다루는 큰일까지 인수인계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는 더 큰 역할의 남자 임원이 되어 있었다.

사랑으로 남을 바꾸는게 얼마나 큰일인지 그리고 위대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고 선배 리더들의 노련한 경험들과 말들, 남임으로써 보여야할 영향력과 생활 태도, 마지막으로 한 생명을 바꾸기 위해 모든걸 바칠수 있는 헌신까지 하나하나를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호프에는 손님들이 오실때마다 보고 반하시는 두가지 모토가 있다. 바로 “실력있는 좋은 사람“, ”행복한 아이들 세상“ 그걸 실현시키고 그런 교육을 하고있고 이런 가치로써 학생들을 만들어 가는걸 느끼고 그 본질로 돌아가려 했던 호프와 11학년 임원때의 나였다. 좋은 사람이 되어갔고 실력도 챙기기 위해 학업적으로도 몸부림을 치며 살았고 전혀 힘들고 지치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그냥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행복했기에 난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힘이 생겼다. 

이게 호프의 가치구나 크게 느끼며 우리 11학년은 밝게 빛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높게 떠있던 12학년은 강렬한 석양을 보여주며 다음세대인 우리를 비쳐주고 있었다. 

11학년 막바지 서서히 다음 학기의 리더진 윤곽이 어느 정도 정해지고 있는 순간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 된다. “여학생 회장은 나나눔, 남학생 회장은 김서진으로 다음 학기 가도록 한다” 목사님이 마지막 리더 회식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다. 사실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부터 들었다. 주찬이형을 보며 느꼈던 남학생장의 무게는 내가 견딜만한 무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선택받는 사람들이 할수록 있는 자리라는걸 알았기에 “함 해보자” 하며 남학생장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렇게 학기가 마무리 되고 나는 걱정많은 머릿속을 다 정리하지 못한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방학의 쉼은 온데 간데 없고 가장 바쁜 날들의 시작이었다. 애들 관리 부터 해서 이젠 학생장 이기에 리더들도  관리를 했고 또 항상 큰틀, 큰틀 했지만 사실 뭐가 큰틀인지 작은틀인지 잘 모르고 그저 배워가던 아기 남학생회장이었다. 

그래도 그중 총회 라는 호프 가장 큰 행사를 잘 끝냈고 리더 수련회도 잘 마치고 이제 다음학기를 할준비를 한후, 걱정과 함께 내 호프 인생의 마지막 last dance를 위한 비행기에 탑승했다.

걱정은 현실이 되고 난 현실이 마주해있었다. 밤잠을 설친지도 몇칠째인지 이젠 습관이 된거 같았다. 남학생쪽 관리는 정말 쉽지 않았고 내눈에는 문제점 밖에 보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어디서 부터 해결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남학생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부담감은 배가 되고 혼자 짊어지기엔 쉽지 않은 무게였다. 이젠 마지막 학년이고 배운만큼 호프에 정말 많은 기여를 하고 더욱 발전시키고 졸업을 하고 싶었는데 “과연 내가 남학생회장으로 졸업할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아무도 모르게 베개에 파뭍여서 울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기에 그리고 내가 할수 있는게 없었기에 나는 그저 매일매일 울고 불며 하나님께 기도했던거 같다. “ 하나님. 남학생들이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발전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정말 그렇게 되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2번, 3번, 4번 매일 반복하며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게 내가 할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고 그거면 충분 했다.

깊은밤이었는데, 아웃팅 조를 짜고 나서 자러 들어가려는 날 잡아 세우는 두 사감쌤이 있었다. 솔직히 또 혼날까봐 무서웠고 나의 한계가 뚜렷이 보이던 때라 어떤 말을 들을지 기대보다는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감쌤들은 그어느때보다 날 믿는 목소리와 말들로 날 격려 해주었다. 그리고 할수있다고 말해주었다. 날 이렇게나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왜 아무도 믿지 않았나 그리고 혼자 짐을 가지고 가려 했나 생각을 하며 미안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함께하는 남임들이 있었고 임원진이, 남학생들이 그리고 든든한 하나님이 계셨다. 다시 난 일어섰고 남학생회장이라는 부담감과 타이틀에 조금 벗어나 김서진 이란 사람으로써 나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이런 압박과 문제들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호프 리더는 각자만의 리더쉽이 있고 장점이 있다. 그것들이 모여있는 리더 공동체이기에 학교를 이끌수 있고 엄청난 시너지를 낼수 있는것이다. 나는 정말 특별한 장점이 있고 리더쉽이 있다. 남을 잘 파악하고 그사람의 장점과 어떤 식의 역할이 어울릴지 판단을 하는것이다. 

그걸 바로 남자 임원부터 적용을 시켰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그 분야에서 날개를 펼치고 활약할수 있게 했다.  

마치 야구팀 같았다. 각자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그리고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 결국 팀의 승리를 이끌려는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야구팀! 우리 남자 임원은 남학생들을 더 발전시키고 더 좋은 호프를 만들기 위해 매일 매일 경기를 뛰며 최선을 다했다. 

그결과 남자들의 분위기는 좋은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한명 한명의 분위기와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명..그리고 또 한명.. 그 하나의 생명을 바꾸기 위해 8시간식 목이 터져라 말한 적도 있고 길게는 3달까지도 그 한사람을 위해 씨름한적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에 울고 불며 바뀌어 달라고 그리고 제발 잘 살아달라 부탁한적도 있다. 전부 진심이었고 그렇기에 진심어린 그 조언과 남임들의 한마디를 통해 그친구들의 인생에 큰변화와 함께 얼굴에 웃음이 번질때마다 나 또한 너무 행복했고 힘이 났다. 

날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형 누나들 그리고 목사님 사모님 사감쌤들이 날 보며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며 감사 또한 크게 느꼈다.

다음으로는 환경을 만들려 노력했다. 호프에는 “모닥불 이론”이라는게 존재한다. 활활타는 호프라는 모닥불에 신입생이라는 장작이 들어와 신입생은 유학생과 동화 되며 활활타게 되고 유학생들도 같이 더 타오르는 모닥불 이론. 우리 남자 임원들은 그런 모닥불이라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한명 한명 바뀐 친구들은 우리들의 말을 잘 따라줬고 남자들의 뜨거운 분위기를 만들수 있었다. 

역시 이론은 틀리지 않았고 한번 타기 시작한 모닥불은 끝이 안보이듯이 탔고 뜨거운 남자 분위기에 난 다시 한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웃고 있었다.

”남학생들이 잘하고 못하고에 남자임원들의 웃고 우는것이 결정된다.“ 정말 뼈저리게 느끼는 문장이고 모두가 웃기위해 뛰었던 결과, 결국 모두 웃을수 있었던거 같다. 내 기도제목이 이뤄진것었다. 그 말은 즉슨 내가 이룬게 아닌 주님이 이루셨다는 이야기다. 이 시기 정말 주님께 기대고 맡기었고 난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체험했다. 사실 학생들의 많은 큰 문제들을 다루며 이친구들이 변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주님이 일하시면 변한다 라는 확신으로 바뀌었고 난 그런 주님의 한사람을 살리기 위한 뜻을 이루는 일꾼되어 사용되어졌던거 같다. 

우리학교가 크리스찬 스쿨이어서 그리고 많은 이들의 기도와 응원이 함께 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정말 값진 경험이고 이제 뭘 하던 다 이겨낼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얻었던 시즌이었다. 솔직히 쉬운 날들 그리고 쉬운 학생들은 단 하루도 한명도 없었다. 한명 한명 다룰때마다 고된 인내심과 정성 그리고 사랑을 요구 했고 주님께서 다 채우셨다. 

그리고 난 졸업을 며칠 남긴 어엿한 남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남학생회장이라는 자리는 나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날 발전시킨 자리는 없었던 만큼 배운게 정말 많았다. 남학생들을 위해 사는 하루하루 들 그리고 시간들 최선을 다할수 밖에 없었고 그 최선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었다. 모범을 보여야 하기에 최선을 다해 살고 그러다 보니 행복하고 알찬 삶, 실력이 향상되는 나의삶을 본 남자학생들은 더욱 잘 따라와 주었고 날 격려해 주었다.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또 한번 최선을 다해 사니, 엄청난 선순환었고 나는 참 행복한 럭키가이 였다. 사실 남자 학생들 그리고 임원진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싶고 그렇기에 그들이 더 발전하기 위해 난 오늘도 뛰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임한다.

나에겐 남학생회장이란 무엇일까? 그 자리는 마치 트럭같다. 굉장히 큰 8톤 트럭! 처음 남학생장의 나는 그 트럭을 들고 업으며 나아갔던거 같다. 그 무게를 견디며 나아가기엔 너무 무겁고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때 서야 알았던거 같다.

 이걸 들고 가는게 아니라 몰고 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이 트럭은 나에게 정말 많은것을 선사해 주었다. 걸어가는 것보다 더 빠른속도로 갈수 있게끔, 그리고 남들의 땅에서의 시야보다 좀더 높은 위치에서 넓은 시야를 가질수 있었고, 많은 학생들을 뒤에 실어서 나아갈수 있었다. 

남학생회장이란 그런 자리였다. 그자리가 날 사용하는게 아닌 내가 그자리를 쓰고 이용하는 그런 도구였던거 같다. 빠르게 나를 더 발전 시켰고, 더 많은 이들을 보게했고, 많은 남학생들을 부스트업 시키고 함께 발전할수 있었다. 그런 멋진 트럭을 선사해주신 목사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사용할수 있게 깨닫게 해준 하나님께 또 감사하다.

이 시간들을 뒤돌아 보며 느낀점 하나는 “난 세계 최고의 학교를 다녔다” 라는 것이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혹은 위인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좋은 학교가 아니다. 한사람 생명을 바꾸고 가꾼후 그 사람이 나가서 사람됨됨이 있이 사는 그런 학생들을 배출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불어 넣어주고 세상의 희망이 되는 학생들을 육성하는 곳, 학생이 중점적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이끌고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선한 공동체인 학교를 이끌고 학생이 판을 치며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펼칠수 있는곳, 행복한 그리고 실력있는 좋은사람을 만들어 내고 그사람의 본질적인 문제를 부딪히게 하며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곳, 학생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도 바꿔내고 교육하는곳, 인생 사는법과 기준점을 제시해 학생 스스로 이겨낼수 있는 실력을 길러주는곳, 이곳 호프는 세계최고의 학교이다! 그리고 나는 세계 최고의 학교에 다녔다.

호프는 내가 살고 있는 어항의 더러운 물을 맑은 물로 바꿔준다. 환경을 만들어 주고 오는 학생들만다 족족 다 바꿔낸다. 어떤 물고기가 많은 양분이 있고 깨끗한 물속에서 기운없어 할수 있을까? 호프는 학생들의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주고 다른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그렇기에 사람을 바꿀수 있는것이다. 난 이곳에서 내이름 석자 빼고 모든게 바뀌었다. 극심하게 부정적인 아이를 매순간 감사할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만 많던 아이를 오늘 하루에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에 몰입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이득만 취하던 이기적인 아이에서 남을 “사랑”할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3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바뀌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님을 알고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남을 바꿔내고 있는 일에 함께 할수 있음에 더큰 감사와 감격 그리고 감동을 느낀다. 

어엿한 졸업생으로써 우리 더 멋진 호프를 살아갈 후배들에게 내가 느낀 호프와 조언들을 말해주고 싶다.

첫번째로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라“
호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저녁예배 마다 오른 손을 들고 아멘을 외칠수 있다. 그건 가장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오늘을 살수 있다는 증거이고 지금 이순간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순간 뿌듯하게 웃으며 행복한 너를 발견하게 될테고 실력있는 좋은 사람이 되어있을것이다. 이 순간만을 몰입하고 너가 할것에 집중해라. 

두번째로는 ”너는 호프의 주인공이다“ 
이영석 목사님께서 우리가 뛰어놀고 활역할수 있는모든 판을 깔아놓았고 무대를 만들어 주셨다. 너는 왜 지금 남 눈치를 보고 걱정하고 있는가? 너가 주인공이다. 너의것을 펼치며 살아가면 되고 자신감 있게 뛰어놀고 너가 할것을 찾으면 된다. 호프는 누구도 아닌 너를 위해 존재한다.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수 있게 만드는 호프이다.

세번째로는 “끝없이 도전해라”
호프는 굉장히 큰 인생 실험실이다. 여기서 한국에선 하지 못할 많은 경험들을 할수 있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모든것에 대해 접근 하고 최고의 것을 찾아라. 끝없이 도전하라는 말이다! 흔히 과학자들은 “실험은 실패했을때 더 성공에 가까워 진다”고 말한다. 

왜 오늘의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왜 과거에 실패와 실수들에 좌절하고 있는가. 호프는 너가 모든지 도전할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최첨단 실험실이다. 너가 지금까지 살았던 실패했던 삶들을 깔끔히 포기하고 버리면서 여기서 얻을수 있는 호프에 가치라는 도구들로 너를 실험하고 연구해라. 모든걸 도전하고 실험하고 최고의 것을 뽑고 호프에 나와서 그 결과값으로 세상과 맞짱뜨는 사람이 되어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기대라.“
우린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고 완벽해질수 없다,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한다. 내가 앞서 말한 3가지를 지키기 위해선 마지막 이 한가지가 가장 중요하고 베이스 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도, 주인공이 되어 나를 펼치기 위해서도, 뭐든 도전할만한 용기가 있기 위해도 결국 주님이 함께 하셔야만 가능하고 주님이 이루실 것들이다. 한가지만 바라보자. 우리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직진하며 앞에 3가지를 인생에 적용시킨다면,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께 기대고 맡긴다면 뭐든 가능하고 호프를 최대한 느낄수 있다.

나에겐 지금 말로 표현할수 없고 설명할수 없을정도로 넘치는 감사와 많음 고마움이 공존한다. 먼저 이런 멋진 학교를 만들고 설립해 호프 학생 한사람 한사람들의 인생을 위해 온몸 바치며 최선을 다해 최고의 교육을 이끌고 계시고 호프 아버지 되시고 누구보다 멋진 리더 되주신 이영석 목사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엄마같은 따뜻한 마음과 현실적인 조언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항상 잘 챙겨주시고 우릴 위해 힘써주신 박미순 사모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더 나아가 학교의 모든 행정적 부분들이나 리더들도 관리하시며 우릴 격려하고 조언해주시는 사감쌤들께, 그리고 함께 호흡을 맞추며 호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 우리 리더들, 또 남자임원들에게 너무 고맙다. 또 내가 흔들릴때 잡아주고 이끌어준 형, 누나들 그리고 누구보다 함께 울고 웃으며 많이 발전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축복해주는 우리학년, 가능성이 무긍무진하고 너무나 잘 따라준 내 후배들에게도 참 고맙고 또 고맙다. 

3년 반이라는 기간, 그리고 20년인생동안 서포트 해주시고 한국에서 기도해주시고 믿어주신 부모님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날 여기까지 이끌어 주시고 능력주시고 지켜주신, 우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난 다시 출발점에 서있다. 또 어떤 끝이 있을지 모르는 시작이지만 난 정말 설렌다. 내가 호프가치로 완전 무장해서 세상과 싸워 무조건 승리할거같은 기대감에 설레는것이 아니다. 또 깨지고 부숴질것이다. 다시 넘어지고 아프겠지만 뭐가 걱정인가? 난 호프인이고 다시 웃으며 일어나 달려가면 된다. 강렬한 세월동안 배우고 실현시킨 ”호프의 가치들“ 그것을 지키며 사는게 지금 내인생의 목표이다. 

그리고 내가 이세상에 호프가 되는게 내 꿈이다.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호프를 마치게 되고 다른 내 인생에 시작된다. 살며 많은 끝을 맺고 시작을 하지만 이보다 감동적이고 마음이 울리는 끝과 시작은 없었다. 나는 지금 발을 때었고 누구보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시원하게 웃고 있다. 

김서진 newsasos@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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