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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호프미션 졸업을 앞둔 유학생들의 과거 ㆍ현재ㆍ미래 이야기

기사승인 2023.05.25  23: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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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기생 최은서(서울)] 호프를 마치며...

‘호프 호 1600일 간의 여정’

최근 들어서 별과 우주에 푹 빠졌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온갖 천문학 관련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을 정도다. 학교 과목 중 하나인 Physical Science (물상과학)에서 배운 우주 상식 중 상식을 말해보자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 일부분이다. 태양계는 우리은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고 우리은하는 전 우주 은하의 약 천억분의 일 즉, 티끌만큼도 안되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에 비하여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시고 크신 분이신지 실감이 난다. 이런 나의 취향을 담아 호프를 우주선에 비유하여 제목을 지었다. 나는 1,600일 하고도 조금 넘는 날들 동안 ‘호프 호’에 승선해 있었다. 더 커다랗고 광활한 우주를 향해서 멀리 더 멀리. 이제부터 그간의 길고 긴 여정을 정리해 보고 되돌아보려고 한다.

[ CH. 1 Me Before Hope호프 이전의 나 ]

153센티미터의 작고 마른 아이.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는 나의 첫인상이다. 나는 왜소한 체구를 닮아 속도 좁은 사람이었다. 과거 나의 유년시절의 아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첫째로 태어나 두 살 어린 동생을 갖게 되었는데, 동생은 부모님의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한 아이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는데, 지금은 당연히 이해하지만 어렸을 적 나는 그것이 너무나 서러웠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라난 나는 이후 누가 무조건 나를 제일 먼저 바래주기를 바랐고 나를 우선순위로 둬 줄 사람들을 찾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그 친구들의 관심도를 재기 바빴고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나에게 있어서 친구란 진짜 마음을 내주는 관계가 아닌 그저 나를 높여 세워주고 찾아주며 관심을 둬 주어야 하는 무언가였다. 계약관계처럼 내가 이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주면 그 친구도 그만큼, 아니면 그 이상의 것들을 내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잘만 지내다가도 이런 생각 탓에 대부분의 친구와 멀어지고, 또 다른 친구를 사귀고 다시 멀어지고를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점점 인생은 초췌해지고 그와 더불어 학생의 본분과 크리스챤으로써의 삶의 본질은 잊은 지 오래였다.
 
정말 심각했다.
매일같이 과외, 학원 빼먹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7년간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가 부모님에게 무교 선언을 하고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축하해주고 부러워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 겨울, 기말고사를 대차게 말아먹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예술고등학교를 들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그렇게 낮은 점수는 또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만해도 공부는 안 하는 주제에 성적은 잘만 나와서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했었는데 정말 큰 교만이 아니었나 싶다. 저번 학기 점수의 절반 밖에 안되는 시험지를 들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난다.
 
그날 저녁, 마음이 상할 때로 상한 나에게 사촌인 혜진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필리핀에 있는 Hope Mission Christian School에 와보지 않겠냐고. 그 말을 듣자마자 이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더 나빠지기만 할 게 뻔한데 그냥 한번 가보지 뭐.’ 그렇게 한국 삶에서 도망치듯 호프 호에 탑승하게 되었다.

[ CH. 2 Me In Hope호프에서의 나 ]

호프 호에 승선한 후, 마냥 행복한 미래가 나에게 주어질 줄로만 알았다. 이곳은 행복한 아이들의 세상이고 경쟁이나 다툼이 없는 곳이라고 했으니까.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행복이라는 것의 기준점이 완전히 세상적인 것들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난 호프에서 지내면 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내 기대가 우습다는 듯, 캠프 시절부터 유학 초반 동안 고난들이 무섭게 몰아쳤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16기 캠프생활 때의 일이다. 살아생전 처음 겪는 변비가 무려 3주간 지속되었다. 정말 심각해서 3주 이후에도 계속 상태가 지속되면 집으로 떠나려 했었다.
 
다행히 그 전에 해결이 되었지만, 캠프생활 내내 고생을 꽤나 해야 했다. 이외에도 내 여전한 성격 탓에 과거를 되풀이하듯 친구들 사이를 재고 계산하고, 따지고 들었다. 잠시 한국에서의 날들을 잊을 수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집 가고 싶다는 생각과 버텨보자 라는 생각이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 싸워 댔다.
 
결과는?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졸업생으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후자가 이겼다. 이 먼 땅까지 와서 또 한번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절벽 끝에 있는 내 노답인생을 멋진 인생으로 바꾸고 싶었다. 옆에서 응원해준 마니또 언니들의 설득도 한몫했다. 그렇게 나는 유학을 결심했다.

새롭게 변해보자고 다짐하며 시작한 유학생활이 일주일 즈음 지났을 아침, 새로운 마음과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는 찰나, 머리가 아파지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 오르게 되었는데 이 열은 한 달간 나를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나와 함께 붙어있게 되었다.
 
여러 날 동안 열이 내리고 오르고를 반복했더니 온몸에 아무런 힘이 들지 않았다. 아프던 어느 날 기숙사 앞에 있던 전신 거울을 지나치다가 깜짝 놀랐다. 내 모습은 정말 말 그대로 뼈와 가죽만 남아있었다. 그때 당시 나의 몸무게는 30kg였다… 내게 찾아온 고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방 안에서 친구와 오랜 다툼과 갈등을 겪었고 그 때문에 방 언니들에게 크게 혼도 났다. 손빨래, 바느질, 청소 등의 기본적인 생활 습관조차 없던 사람이었기에 혼자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첫 공동체 생활에 익숙지 않아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에도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기댈 수도 없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뿌리내린 못난 습관과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과 갈등도 많았다. 모든 것들이 내 손을 빠져나가 붙잡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였다.
 
호프에서 매일 드리는 예배를 통해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주는 모난 내 마음을 아시지만 나를 품으셨다. 졸업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유학 결심 후의 1년이 나에게 제일 고된 시기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원하는 세상의 행복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알 길 원하셨던 것 같다. 또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를 등져버린 나의 마음을 다시 주께로 향하게 하시려 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고난들을 통해 절벽 끝까지 몰린 내가 의지할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폭풍 같았던 1년이 지나가고 내겐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목사님의 말씀들, 리더언니 오빠들의 충고와 조언으로 내 내면을 올바른 길로 바꾸기 시작했다. 공동체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갔다. 호프의 장점 중 장점이 ‘자기 주도’이다.
 
아마 호프 학생들 모두가 이에 동의할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완전히 독립된 상태에 놓이니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 않다가 하려니 실패도 많이 겪고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해냈다는 것이다.
 
한번 스스로 해냈다면 그 이후에 같은 일이 생겨도 나 혼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자기주도의 힘은 학업 면에서도, 평소의 삶에서도, 역경 속에서도 모두 빛을 발한다. 유학 1년 차가 되면서 지금 자취해도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의 달인이 되어버렸다.
 
추가로, ESL(정규반 SOT에 가기 전 기본 영어실력을 기르는 목적의 수업)을 졸업하며 SOT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자기주도의 힘을 기르게 되었다. 나에게 있던 심각한 문제 중 한 가지가 바로 미루는 습관이었다.
 
SOT 수업은 하루에 25페이지씩 스스로 교과서를 푸는 형식인데, 수업을 처음 들어간 일주일 동안 하루 분량도 못 채웠다. 계획 ‘미루기’ 대장인 내가 SOT 수업을 매일 같이 하게 되니 몇 개월 후, 하루에 25페이지 꼭 채우는 계획 ‘이루기’ 대장이 되었다.
 
나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궁극적으로 내 변화를 책임진 좋은 친구가 있었다. SOT에 올라오면서 학업에 성실한 친구 한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우연히도 내 옆자리였는데, 그 친구는 매일같이 30페이지, 많으면 40페이지씩 풀어나갔다.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선생님이나 공부 잘하는 선배들에게 찾아가 질문을 했다. 친구의 노트에는 항상 빼곡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처음엔 그 친구를 보면서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친구의 태도와 성실함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바뀌려고, 인생 멋지게 바꿔보려고 호프에 온 것인데 너무 안일한 태도로 과거의 습관에 갇혀서 나태해져만 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후 절대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조금씩 조금씩 완성하는 페이지 수를 늘려나갔다. 내일로 미룰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옆자리 친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몇 달이 지나자 미루는 일은 줄어들고 매일같이 25페이지를 풀었다.
 
가끔씩 30페이지씩 풀어나가기도 했다. 나 스스로 힘으로 ‘미룸’이라는 습관을 떨쳐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습관화 시켜낸 것에 너무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좋은 영향력을 준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호프의 학생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가 아닌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준다.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고 하며 서로를 성장시킨다. 목사님의 이론 중 하나인 모닥불 이론을 소개하고 싶다. 활활 타고 있는 장작들이 있을 때 물에 젖은 장작이 그 안으로 던져져도 함께 타오른다는 이론이다.
 
친구는 불타는 장작이었고, 물에 젖은 내가 호프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에 둘러싸이니 동화되어 함께 불타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 인생의 최고의 친구 중 한 명이었고 지금까지도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 CH. 2-2 내 삶을 180도 바꾼 호프가치 TOP 3 ]

호프의 장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자랑을 해보려 한다. 이야기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것들을 다 말하기까지는 온종일이라도 부족하고 읽는 이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 중 가장 중요하고 큰 영향을 준 호프 가치 딱 세 가지를 소개하겠다.
 
첫째, ‘인생의 브레이크’. 최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호프의 엄격한 규칙들의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호프는 유독 다른 학교들과 다르게 금지하고 억제하는 규칙들이 많다. 신입생 시절에는 그것들이 마냥 나를 답답하게 만들고 옥죄어 오는 수갑과도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호프에서 살다 보니 있어야만 하는, 나를 보호해주는 펜스였다.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규칙을 어겼다는 건 단순히 규칙만을 어기는 것이 아니야. 너희 인생의 절제하는 능력, 즉 브레이크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 브레이크가 없으면 무작정 달리고 달리기만 하다가 낭떠러지 앞에서도 엑셀을 밟아 결국 떨어지고 만다고 하셨다.
 
한번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그 다음에도 그 다음의 다음 번에도 쉽게 어기고 만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다가 결과가 지옥일 게 뻔한 유혹이 찾아오게 될 때도 단번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분별력과 절제력 없이 사는 삶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이 어떻게 그 상황을 참고 넘기겠는가.

두번째, ‘무엇이든 무모하게 도전할 용기’. 과거 나는 ‘도전’이라는 단어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무조건 안정적인 것, 이제까지 내가 해왔었던 방식을 선택했고 도전해서 실패할 경우를 극도로 꺼리기만 했었다.
 
실제 경험 중에서 예시 한 가지를 들어보자면, 카페에 갈 때마다 카라멜 마끼아또만 마셨다. 어쩌다 바닐라 라떼에 도전했다가 너무 써서 몽땅 버려야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닐라 라떼의 ‘실패’를 경험한 후, 다른 종류의 커피를 도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시 실패하고, 돈 버리고, 실망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렇듯 작은 일에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하는 경우를 맞닥뜨리면 쉽게 무너지고 다시 도전하기를 힘겨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큰일에서는 더욱더 그 증세가 심했다.
 
그 중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무대 앞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도서부에 지원했다가 면접을 완전히 망쳐 떨어진 이후로 면접 같은 모든 행사는 참가하지 않았다. 조금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나를 집중하는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빨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무대 공포증 엇비슷한 증세가 있었다. 또 실패할 거야 안될 거야 망칠 거야 등등.. 부정적인 생각만 했던 것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호프에서도 여전히 그래 왔다.
 
한번 뇌리에 박힌 생각은 쉽게 빼내려야 빼낼 수 없었다. 내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변화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목사님께서 끊임없이 도전적인 말씀들을 해주시고, 실패는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호프가 다른 점은 그저 이론이나 말뿐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 언니들에게 떠밀려 말씀 적용을 하러 무대 앞으로 나갈 때마다 ‘난 또 망치게 될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앞에 설 때마다 웃으며 응원해주는 몇몇 친구들 혹은 언니 동생들을 보며 말하니 ‘실수했어도 괜찮다’ 라는 생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목사님과 함께하는 여러 비전트립을 경험하며 이 부분을 완전히 해결했다. 목사님께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또한 나를 변화시켰다. 미국여행 때부터 내 목소리에 자신감과 힘을 넣는 연습을 했고 가장 최근 비전트립인 7학년 이하,11,12학년 여자들 여행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열심히 귀 기울여주고 웃어주고 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호프는 나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환경임을 다시금 느꼈다.
 
이 여행에서 목사님께서는 ‘못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를 강조하셨다. 시도해보고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했어도 그것은 나의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며 손해가 절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통해 뭐든지 시도해볼 용기를 얻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어도 겪는 실패는 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깨달았기에. 이후 내게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다.
 
작년 12월, 패밀리데이에서 밴드공연을 하고 싶어서 난생처음 일렉기타를 잡았다. 본 무대에서도, 이후 한 번 더 있었던 다른 무대에서도 실수가 있었지만, 전혀 후회는 없었다. 과정에 100퍼센트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나의 다음 도전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음 도전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최근에 시청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현대회사의 창립자 정주영 회장이 말한 명언이 생각난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거야.”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한국에서 사는 삶 속에선 감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날마다 불평불만으로 가득했었다. 어쩌다 하는 기도에는 세상의 것들을 구하는 간구 뿐이었고 세상 모든 불행이 나한테만 온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호프에서 살아가며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이 얼마나 내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지 느끼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되니 세상 모든 것들이 감사 투성이었다.
 
오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손발 움직일 수 있음에,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마저도. 감사하기 시작하니 나의 삶의 시선이 바뀌고, 삶의 질이 올라갔다. 내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도 있겠지만, 정말로 내 인생에 좋은 일들이 많이 찾아왔다.
 
최근에 읽은 책, ‘이지성의 꿈 꾸는 다락방’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긍정적으로 계속 생각하고 꿈꾼다면 정말 긍정적인 일들이 내게 찾아오고, 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산다면 안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의 내용과 같이 매일 감사하며 살고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행복이 항상 내 옆에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강력히 권고 드린다. 모든 것들을 당연시하지 말고 감사하라. 감사는 행복을 만드는 중요한 첫 단추이기에. 덧붙여 말하자면, 무작정 “감사하는 마음 가지며 살아야지!” 한다고 해서 감사의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개인적인 의견은, 감사하는 버릇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감사와 관련된 찬양을 입에서 자동재생시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화나고, 억울하고, 힘들어도 감사 찬양을 부르면 가사를 따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둘째는 정말정말x1000 추천하는 방법이다. 바로 감사 노트 작성하기! 작년부터 시작해서 벌써 170일째 감사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시간, 하루 당 다섯 가지 감사한 점과 함께 묵상한 말씀을 쓴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감사한 점을 찾다 보면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리 힘든 날이었어도 다섯가지 모두 찾아내며 결국은 감사한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CH.2 – 3 그리고 모든 것이 은혜였다]

다시 나의 호프 이야기의 흐름으로 돌아가 보겠다. 호프에서 1년을 보내고 난 후, 9학년으로써 필리핀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인간사회를 완전히 뒤바꿀 사건이 발생했다. 예상했겠지만, 그렇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무섭게 퍼지기 시작했고, 한국이나 필리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리핀 정부에서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집 밖으로 나오는 모든 활동을 제한하는 Lock Down 정책을 실시했다.
 
호프 학생들 또한 꼼짝 못한 채로 학사에서만 갇혀 생활하게 되었다. 자유롭게 쇼핑 나가던 시절이 그리워지고, 간식에 제한이 생기니 조금씩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하여 부모님이 걱정되었고 나 또한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여기서 몰랐던 내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필요 이상의 걱정과 염려를 쌓아갔다. 걱정지수가 점점 올라가니 불평불만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부정적인 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아껴두었던 간식들을 세 번에 걸쳐 도난을 당했다.
 
정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왜 생겨나서 사람들 간의 신체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키며 긴장과 걱정 속에서 불안을 떨게 만들까? 이 질문은 필리핀을 떠나 호프 코리아 생활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신안 임자도에서 겨울을 보내고 제주도 서귀포에서 일 년을 더 보내는 동안 찾을 수 없었던 답을 패밀리 데이를 통해 얻게 되었다. 때는 2021년 12월, 제주도에서 패밀리 데이가 시작되었다. 작년 패데(패밀리데이 준말)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아쉬움이 컸던 만큼 21년도 패데에는 많은 기대와 준비가 있었다.
 
본 행사가 시작되고, 학생들 모두 열정과 행복의 마음으로 무사히 무대를 마쳤다. 이후 전교생 다 함께 참여하는 마지막 퍼포먼스를 위해 무대 앞에 섰다. 나는 맨 앞줄 가운데에 서 있었고, 모든 학부모님은 코로나 정책 탓에 벽 쪽으로 바싹 붙은 채 멀리 떨어져 있으셨다.
 
합창이 시작되었고, 찬양의 제목은 ‘은혜’였다. 모든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서 내 머리를 탁! 강타했다. 코로나 사태는 주께서 주시는 메시지였다. 찬양의 가사처럼, 코로나 이전 내가 누리던 모든 것들, 순간들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음을.
 
그리고 그때 그 순간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떨어진 채 비좁은 공간에서 찬양하시는 부모님들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감사했다. 작년과는 달리 이렇게나마 오프라인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내 입으로 은혜라는 찬양을 고백하면서 기나긴 코로나 기간 동안 겪어왔던 어려움들, 그로 인해 쌓여온 불평불만들이 다 씻겨 내려가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만이 남았다.
 
나뿐만 아니라 호프 학생들과 부모님들도 비슷한 감동을 느끼셨는지 찬양하며 많이들 우셨다. 아직까지도 그 순간은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모든 어려움에는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그것을 파악하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숙고해야 한다는 말씀을 최근에 들었다.
 
코로나 사태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 이 고난에는 주께서 우리가 주의 은혜를 깨닫고자 하시는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이때의 일을 마음에 간직해 두며 앞으로의 삶의 고난들을 만날 때마다 이처럼 행하며 그것들을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은혜가 가득한 패밀리데이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몇 주가 지나자, 나는 2022년 새해에 첫 비전트립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호프는 스스로 성장시키고 경험을 쌓을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중 하나가 비전트립이라고 생각한다.
 
비전트립은 목사님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단순히 즐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만나며 동기부여와 교훈, 그리고 인맥을 얻는다. 목사님이 알려주시는 인생 가치들을 배워가고 경험하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동력을 얻게 된다. 필리핀에서 다녀온 비전트립들도 정말 많은 경험과 소중한 추억, 발전을 쌓아 돌아왔지만, 미국 비전트립이 내게 가장 많은 교훈을 남겼다.
  
여행하던 당시 임팩트가 강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다 같이 코로나에 걸려버린 사건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넘어가던 날에 팀원 여럿이 아팠었다. 나는 그나마 목만 따끔거리던 수준이었는데, 반대로 열과 기침이 났던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엔 따듯한 기후의 캘리포니아에서 추운 텍사스로 넘어와 기온차이로 감기에 걸렸나 싶었지만,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서 코로나 테스트를 한 결과, 4명을 제외한 모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음성을 받은 사람들은 떠나고 나와 나머지 열댓 명은 미국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때라 솔직히 너무너무 두려웠다. 내 집 한국도 아니고 12시간 떨어져 있는 외국 땅에서 코로나에 덜컥 걸리니 눈앞이 깜깜했다. 양성판정 이후 다들 초조해진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 우린 일반 백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슈퍼항체가 생긴 것이라며 말씀하셨다.
 
그 분위기를 따라 모두 긍정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좋은 리더는 팔로워들을 살리고 어려움에서도 극복할 힘을 불어넣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코로나 테스트를 기다리며 일주일 동안 열심히 산책도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사실 즐길 거 다 즐겼다.
 
우리가 앓았던 시절은 진작 지났었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한 몸으로 계획에 없던 일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누렸다. 양성판정 이전 텍사스 여행보다 이후 텍사스 여행이 훨씬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니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또 한 번 내 한계를 깰 수 있었기 때문이다.

[CH.2 – 4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서울 코엑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입체적으로 파도가 치는 모습을 만든 D’strict 회사 홍보영상이었다. 그때부터 몰입형 미디어아트에 푹 빠졌고 나의 진로를 미디어아트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2년도 마지막 방학에 D’strict가 만든 대형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회인 아르떼뮤지엄을 다녀오고 더욱더 내 꿈에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와 관련된 대학을 찾고 유망한 나라들을 찾아보며 고심 끝에 결정한 나라는 캐나다였다.
 
정말 오랜만에 복귀한 필리핀 본토 호프에서 캐나다를 꿈꾸며 열심히 영어공부도 하고, 토플도 보고, 전력을 기울이며 살았다. 난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제작하고 싶었고, 내 결정에 한치의 의구심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23년에 들어서면서 내 확신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TED 강의와 호프에 오신 강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마지막 최종타를 날렸다. ‘인생을 성공하는 자는 목표가 자신이 아니라 이웃, 사회, 더 나아가 세계인 사람이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선 하나님과 함께해야 하고, 주의 비전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제야 왜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제껏 난 나의 잘됨을 위하여 그 꿈을 향해 달려갔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전이 아닌 단순히 내 야망이었을 뿐이었음을 깨닫고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 주께서 원하시는 내 길의 방향이 어디인지. 그 이후에 있었던 ‘청년 다니엘 기도회’와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연속적으로 이어져 온 비전에 관한 설교들은 주가 주신 재능을 가지고 그것들을 숙달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게 주신 은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될게요.” 내 달란트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그들을 성장시키고, 내 능력을 세상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교직일 수도 있고, 선교일 수도 있고, 강사일 수도 있고, 내가 생각지 못한 다른 길일 수도 있고. 정확히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으나 이가 나의 비전이라면 주께서 너무나도 잘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꿈은 내 분야에서 고평가를 받는 창작자였다. 그러나 며칠 밤새에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고 잘하는 분야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 졸업을 앞두고 진로의 방향이 흔들리고 불투명하면 누구나 불안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전보다 평화롭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멋진 길을 예비해 두셨을지,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새로운 꿈을 기대하며 그를 위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물론 계획을 한다 해서 그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기에 무엇보다 주가 주신 비전을 바라보는 것, 하루에 최선 다하는 것을 초점으로 준비하고 있다.
 
만약 인생이 내가 바라온 길을 따라 평탄하게 흘러만 간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뻔히 내다보이게 되니 재미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명확함이 주가 준비해두신 미래를 기대하고 소망하게 한다. 최근 내가 겪었던 일처럼.

[ CH.3 Me Beyond Hope호프 이후의 나 ]

때론 우리는 줏대 없는 인생의 나침반 때문에 굳이 헤매지 않아도 될 길들을 헤맬 때가 많은데, 내가 타고 왔던 호프 호는 아주 정확한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다. 수학문제, 과학문제 하나 더 푸는 시간에 정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가르치는 학교는 단언컨대 호프 뿐일 것이다.
 
세상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기본을 가르치고 실력 있는 좋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곳, 호프. 이 모든 것은 목사님과 목사님의 이끄심 아래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다수 학생들의 덕이다. 여러 학생이 호프의 긍정 에너지를 받고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 사례 중 하나였다. 앞서 나열했던 수많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 나에겐 정말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호프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같은 시련이 호프 이후의 내가 아닌 호프 이전의 나에게 일어났다면 그대로 좌절하고 절망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게 뻔하다.
 
이 학교를 빼놓고는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호프가 준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매번 나의 한계를 마주하며 그것을 깨트리고 내 임계치를 넘는 도전을 끊임없이 한다. 그 결과로 난 월등히 성장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호프는 나의 내면을 단단하게 단련시켜준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매일같이 드리는 예배들과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마치는 학교 수업들, 학생이 직접 이끄는 Devotion time (= QT), 크리스챤 선생님들. 하나님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 생활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만들어주었고, 향상하게 시켜주었다.
 
이렇듯 나는 호프 속에서 인성, 실력, 신앙을 겸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졸업 후의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나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정말 짧은 시간, 4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멋진 크리스챤, 학생, 그리고 사람으로 만들어 준 호프에게 정말 감사하다.
 
호프를 열심히 이끄시는 모범적인 리더이시자 호프 아버지인 멋쟁이 이영석 목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 뒤에서 묵묵히 그러나 엄청난 사랑을 부어주시고 섬겨주셨던 박미순 사모님께, 더 나은 호프를 위해 일하시는 사감 선생님들과 리더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가르치시고 진심을 다해 사랑해주셨던 학교 선생님들께, 힘이 되어준 나의 동역자, 친구들에게. 모두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미래를 응원한다. 이제는 호프 호에서 내려 더 커다란 우주를 맞이할 차례이다.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더 넓고 광활한 세계를 경험하려 앞으로 전진함으로써 더욱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6번째 입학생이었던 내가 4년 반이라는 시간을 지나가 이제는 호프를 뒤로한 채 그 너머에 있는 미지의 장소로 발을 내딛는다. 21번째 졸업생으로서!
 

최은서 newsasos@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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